* 명탐정 코난 극장판 3기 세기말의 마술사에 나오는 '포사 청란' 이 등장합니다. 원작과는 다른 대사의 출현, 장면이 포함되어 있으며 '에도가와 코난'이 검은 조직의 보스로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또각, 또각 하는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훤히 뚫린 공간을 메꾼다. 다른 흔적도 없었던 자리에 딱 봐도 누군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물건이 의자의 가장자리에 놓인 것에 여자의 눈이 희번뜩였다. 얇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물건을 집어 든 여자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입가를 실룩였다.

- 도전장이라.

그녀가 중얼였다. 내뱉은 목소리는 풍경과 같이 청아하고 부드러웠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구겨진 카드는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웃는 것처럼 보여왔다.





*





점점 커져가는 불길 속에서 여자는 눈을 번쩍 뜨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작게 숨을 뱉자 저 멀리 앞에서 들려오는 거짓말 같은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가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도저히 그 목소리의 주인들이 직접 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귀를 훑고 지나갔다. 여자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간다. 조금씩 떨려오는 주먹을 애써 꽉 쥐고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손가락을 움직여 총의 모양을 다잡았다. 뜨거운 불길 탓인지 긴장한 심장의 탓인지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왔다. 목소리가 끊기고 여자의 앞에 정체를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작은 꼬마 아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아이가 웃었다.


"재미있는 게임이었어요, 그렇죠? 스콜피온."
"꼬마... 정체가 뭐지?"
"내 이름은 코난, 탐정이죠- 그래, 탐정이지."


어린아이 같지 않은 말투에 여자가 다시 눈썹을 일그리고 아이를 살폈다. 어디로 보나 작은 몸집에 커다란 안경, 아이답게 조금 멋 부린 것처럼 보이는 푸른색의 재킷과 빨간색의 나비넥타이. 얇고 가느다란 팔다리는 그녀의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여자는 더 이상 망설일 필요 없다 생각하고 총을 들어 올렸다. 아이라 해도 내 정체를 아는 이상 살려둘 수 없다, 그리 생각했다. 그에 아이가 웃었다.


"스콜피온, 그게 당신의 또 다른 이름이었죠? 저는 당신을 잡으러 온 게 아니에요. 아, 다른 의미로 잡는다라면 맞는 표현이겠지만."
"무슨 소리지?"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어때요? 나랑 손 잡지 않을래요?"
"하하, 탐정놀이를 하는 너와?"
"맞아요. 아, 후자는 정정하게 해주세요. 탐정놀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나름-"


아이의 말이 끝마치기 무섭게 날아온 총알이 그녀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그에 빠르게 총구를 휘둘렀지만, 이미 누군지도 모를 자들에게 둘러싸여버린 그녀는 침착히 총구를 내리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뭐야, 보스. 고작 이런 여자를 잡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질투 나려고 하는 걸."


유유히 여자의 뒤에서 나타난 것은 아름다운 금색의 머리를 풀어헤치며 배경의 불꽃을 라이터 삼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여자의 어깨에 두 팔을 올렸다. 순식간에 목을 제압당한 여자의 입꼬리가 실룩 이자, 입에 물린 담배를 쥐고 퀴퀴한 연기를 뿜어냈다. 메케한 연기가 여자의 코끝을 간질인다.


"단순한 어린아이의 호기심이라고 생각해, 베르무트."
"그것도 그래. 언제까지 그 꼬마를 연기할 생각이야? 슬슬 질리려고 해. 어린 꼬마랑은 아무 것도 못 하잖아."


반쯤은 농담이 섞인 대사였는지 빙그레 웃어보인 베르무트가 여자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허리춤에서 꺼내든 총을 흔들어 인사해보이곤 여자의 두 발목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경쾌하게 울린 총소리가 스치고 여자가 쓰러졌다.


"너무 거칠게 다루지는 말아줘. 말했잖아, 나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어 베르무트."
"알았어, 알았다구. 봐? 아직 발밖에 안 노렸어. 보스는 이 쪽이 더 취향이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에 분노가 치밀면서 일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거기까지라는 걸 알아낸 자의 이 눈빛."


나는 보스의 취향을 너무 잘 안단 말이야. 베르무트가 빙그레 웃으며 총을 허리춤에 숨겨넣는다. 그에 아이가 작은 어깨를 으쓱이고 웃었다. 그러게. 맞장구 치는 목소리가 여자의 입꼬리를 재차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베르무트가 그녀의 목에 쑤셔박은 주사기로 인해 여자는 다시 눈을 감아야 했다. 작게 읊주린 욕조리 덕에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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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폭풍우가 온다더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내뱉은 한마디가 나직하니 방안을 울렸다. 그에 방문을 나서려던 신이치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나를 마주했다. 그래서?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고 무거워진 고개를 한 손에 괴자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끼익, 하는 소리와 같이 일정한 박자로 울리는 진동은 곧 침대 앞에서 멈췄고 조금 더 깊은 소리와 함께 침대가 출렁인다.


"카이토."


평소보다 조금 작은 목소리로 신이치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여전히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카이토. 한번 더 내 이름을 부른 그 목소리는 조금 짜증이 실린 듯 날카롭게 내 귀를 찔러왔다. 못 이기는 척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자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의 그의 눈에 내가 담기는 것이 보였다. 이내 다시 눈을 돌리자 차가운 그의 손이 내 뺌에 닿았다. 내 온기를 뺏어가는 것 같이 점점 따뜻해져 오는 손에 다시 눈을 돌리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차오른다. 순식간이었다. 그의 보드라운 입술이 내게 닿은 것은. 보드라운 촉감에 비하면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것에 빨려들어가듯 눈을 감았다. 서로를 탐하고 있다는 것은 입술이 맞물릴 때마다 깊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서로의 모양에 맞춰가며 안쪽의 물컹한 것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떨어져 나왔을 때엔 이제 누구 것인지 알기 힘든 하얀 실이 축 늘어져내렸다.


"미안해."
"사과할 일이라면 하지 마."
"미안해."
"가지마, 신이치."
"미안해."
"내 옆에 있어줘."
"미안해."
"그 소리 좀 제발 그만해!"


꽉 쥔 주먹을 창틀에 쥐어박자 창밖의 하늘에서 강한 번개가 내리쳤다. 순식간에 주변은 암전이 되었고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네 얼굴에 한편으로는 안심하다가도 네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이치? 이름을 불러봐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했다. 허공을 향해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내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빛이 들어와 방을 비췄지만, 방안에는 여전히 나 혼자였다. 후들거려오는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자 그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감싸왔다.


-언제까지 그렇게 날 찾을 셈이야? 이제 잊어야지.
"내가 어떻게 널 잊어."
-카이토, 나는 네 환상일 뿐이야.
"거짓말이야. 신이치는 아직 살아있어."
-어디에? 여기에?


다시 찾아온 어둠은 순식간에 방안을 둘러싸고 창가에서 흘러들어온 빛은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진득한 것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어와 고개를 내려보니 검붉은 색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그 색의.


"신이치?"


그 날의 꿈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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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키드입니다:3

* 키드만 등장합니다:3

 

 

 

 

 

 "안녕? 또 하나의 나, 라고 부르는 게 좋으려나. 쿠로바 카이토 군."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 소년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 말을 마치고 활짝 웃어오는 소년에 카이토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머리카락 색도, 얼굴도, 웃는 모습에 심지어 손 크기까지 자신과 똑같은 그에 카이토가 떨리는 손으로 소년의 손을 맞잡았다.

 

 

 "멍청이 아냐, 이거."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손을 쳐낸 소년이 어깨를 으쓱이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한 바퀴 손을 둘러보고는 다시 카이토에게 시선을 돌리며 미소 지어보인다. 사뭇 다른 또 다른 모습에 카이토는 허공을 오가는 손을 꽉 주먹쥐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 자는 누구지? 다른 이가 나로 변장한 건가? 그 놈들이 내 정체를 알아낸 건가? …아니, 아냐. 진정해 쿠로바 카이토. 벌써 들켰을리가 없어. 그래. 후우…. 하아…. 천천히 심호흡을 뱉어가며 카이토가 눈을 꽉 감았다가 다시 뜨고 정면을 바라봤다. 

 

 

 "오오, 그래야지. 겨우 이거 하나가지고 벌써부터 포커페이스를 잊어버리면 내가 곤란해. 지금까지 참은 만큼은 해줘야 하지 않겠어? 카이토."

 "하하, 누군지 몰라도 나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나봐?"

 

 

 그에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년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부여잡고 근처의 벽을 쾅쾅 내리치면서 깔깔깔 웃어 재끼곤 어느새 흘려진 눈물을 닦으며 소년이 다시 자세를 고치고 카이토를 마주했다.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소년이 카이토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고 카이토의 옷깃을 붙잡아 자신에게로 잡아당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멍청하기는. 나는 너야, 카이토. 너는 나고. 너와 나는 같은 사람이지. 최근에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 유난히 화가 나는 날이 적다던가.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던가. 분노나 슬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던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이토를 밀어넘어뜨리곤 소년이 자신의 옷 매무새를 고치며 고개를 까딱였다. 언제부터 껴 있었는지 알기 어려운 반지들이 소년의 손가락에서 유독 빛이 나는 것에 카이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소여전히 자리에 넘어져 있는 상태로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카이토에 소년이 크게 혀를 찼다. 쯧쯧쯧. 이게 정말 쿠로바 카이토라니,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는데. 고개를 떨군 채 절레 젓고는 소년이 다시 카이토에게 다가왔다.

 

 

 "이봐. 너 정말 모르겠어? 놀라는 건 그쯤 해야지. 계속 그러면 재미없어."

 "하, 하하. 누굴 뭘로 보고. 상황은 파악했어. 단지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의문이 들었을 뿐이야."

 

 

 …그래? 소년은 다시 카이토에게 손을 뻗었다. 카이토는 그에 코웃음 치며 손을 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떨리는 다리를 애써 주먹으로 내리치며 진정시키고 다시 소년을 마주한다. 소년과 카이토의 사이에 알 수 없는 공기가 맴돌았고, 공기를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카이토였다.

 

 

 "그래서."

 "그래서?"

 "무슨 꿍꿍이야?"

 "내가? 꿍꿍이?"

 

 

 카이토의 말에 소년이 눈을 다시 한번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있으니까 이런 일이 생겼겠지. 안그래?"

 "……."

 

 

 카이토의 말에 소년이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듯 말듯 벙긋거리곤 다시 카이토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다시 이쪽을 바라본 소년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려있었다.

 

 

 "난 널 없애러 왔어, 카이토. 지긋지긋한 그 가식스러운 웃음을 없애기 위해서. 언제나 너는 현실을 피하며 자신의 잘못에게도 고개를 돌리고 침묵하지. 그리고 그에 대한 분노를 꾹꾹 눌러참으며 지금까지 잘 버텨왔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무슨…소리야?"

 "나는 이제 지쳤어, 카이토. 더 이상 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서 버티기도 힘들어. 네가 꾹꾹 눌러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나야. 쿠로바 카이토. 너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그런 존재지. 아, 안타깝게도 나는 실체야. 봐, 나는 너를 만질 수 있고, 너도 나를 만질 수 있어. 나는 이렇게!"

 

 

 주머니에서 꺼낸 검은 천이 순식간에 커져 소년의 몸을 감싸고 천이 내려앉을 때, 소년의 모습은 말 그대로─ 새까맣게 물든 키드였다.

 

 

 "너, 너!?"

 "너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지."

 

 

 망토 자락을 손가락에 끼워 화려하게 한 번 휘두른 소년은 손을 자신의 가슴께에 올리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본래의 키드와는 다른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 일색이 소년의 몸을 감쌌고, 청아하게 푸르렀을 리본은 붉고, 또 붉게 타오르는 피처럼 새빨갰다. 소년이 몸을 일으키자 그의 모노클이 빛에 반사되어 그의 눈을 가렸다. 순식간에 읽을 수 없게 되어버린 그의 표정은 카이토에게 두려움만을 안겨주었다.

 

 

 "무슨, 무슨 짓이야?"

 "카이토, 진심이야. 나는 정말 지쳤어."

 

 

 소년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빼내어 이리 저리 돌려보고는 공중으로 튕겨 올려 짝! 손바닥에 담고 다시 양 손을 펴내보였다. 아까까지 있던 반지는 사라지고 나타난 단검 두자루를 화려하게 돌려 쥐고는 한 쪽을 빠르게 카이토에게로 내리꽂았다. 그에 카이토가 움찔하고 자리를 벗어나 다시 소년을 마주보자 소년은 고개를 까닥였다. 집어. 소년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카이토가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검을 집어들자 그에 만족스럽다는 듯 소년이 웃는다.

 

 

 "자, 내기하자."

 "내기…?"

 "그래, 내기. 너와 나. 두 명이서 지낼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내기하자. 내가 먼저 널 없애게 될지, 네가 먼저 날 없애게 될지."

 

 

 어느 쪽이 이기든 다른 한 쪽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이 이 게임의 룰이야, 카이토. 어때, 재미있겠지? 카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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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습니다. 짧아요!

* 리퀘로 작성한 글입니다.

 

 

 

 

 

 "코난 군은 이 사건이 끝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네?"

 

 

 방금 막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에 의아한 듯 소년이 되묻자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아이에게 무릎을 굽혔다. 시선이 맞닿자 남자가 언제나 감고 있던 남자의 눈이 슬며시 떠진다. 짙은 녹색의 눈동자가 아이를 마주했다. 아이의 눈썹이 찌푸려지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자 남자가 쿡쿡, 소리내어 웃었다.

 

 

 "코난 군이라면 어쩔까 싶어서요."

 "깜짝 놀랐잖아요. 방금 마치고 왔는데 무슨 사건을 이야기하나 했다구요."

 "그런가요? 그래서 답은요?"

 

 

 남자가 다시 눈을 감고 웃으며 말했다. 그에 아이가 조그만 손으로 턱을 만지며 음, 하고 운을 띄웠다. 남자는 아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어떤 대답이 나올지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어느 정도 그의 정체는 알고 있었기에 예상대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답이 나올지, 아니면 여전히 코난으로써 연기를 해올지 남자는 어느 쪽이든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윽고 아이가 입을 열었다.

 

 

 "잠깐은 이대로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호오. 어째서?"

 

 

 남자의 물음에 아이는 씩 웃으며 질문으로 대답했다. 그럼 스바루 씨는요? 원래의 그 사람으로 돌아가는 거죠?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을 거 아니에요. 영락없는 아이의 웃음과 함께 말해오는 아이에 남자가 턱을 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글쎄, 본인의 일은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야 물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저도 아직은 이 모습이 마음에 드네요."

 "그래요? 의외의 대답이네요?"

 "그건 서로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것도 그래요. 아이에 살짝 미소짓고 남자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살짝 허리를 굽혀 아이에게 손을 뻗어 아이의 손을 잡아올렸다. 갑작스레 맞잡힌 손에 아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아이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발을 떼었다. 이끌려지듯 같이 발을 뗀 아이는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언가 신난 듯 해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의문을 띄우면서도 남자에게 꽉 잡힌 손에 왠지 모르게 볼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그럼 스바루 씨는요?'

 

 아이의 웃음 섞인 목소리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저도 아직은 이 모습이 마음에 드네요."

 

 그 말에 아이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봐왔지만 남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손을 꽉 쥐고 생각했다. 주인이 아직 그대로 있겠노라고 말한다는데 내가 멋대로 떠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코난 군. 가늘게 떠진 남자의 눈이 아이에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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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퀘로 작성한 글입니다.

* 사망 소재 있습니다. 눈쌀 찌푸려지시는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꿈을 꾼다. 지독하게도 잔인하고 서글픈 꿈을. 그 꿈 안에는 언제나 한 남자가 등장한다. 끔찍한 절망을 외치며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손에 들린 탄알 없는 총은 뜨거운 열기도 잠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고 붉게 달아오른 목대는 끊어진 목소리로 간간히 숨을 뱉어내었다. 정신을 잃을 것 마냥 새하얀 자위를 드러내며 너무 벌어지다 못해 끊어질 것 같은 턱을 떨면서 애꿎은 땅을 내려치는 너는 분명, ……나였다.

 

 

 

 

 

*

 

 

 

 

 

 "후루야 씨?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

 "어? 아, 아아. 괜찮아."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 정신을 멍하게 두었던 탓에 걱정이 되었는지 소년이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밀어왔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자 네가 고개를 넣고 어깨를 으쓱였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라도 읽은 것인지 만족스럽지 않은 눈을 굴리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굳이 입 밖에 꺼낼 정도도 되지 않는 한심한 이야기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삼킨 내게 조금 삐진 듯한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표정을 정리해 눈가를 휘어 미소지었다.

 

 

 "가끔 후루야 씨의 그런 얼굴 싫더라."

 "응? 무슨 얼굴?"

 "안 가르쳐 줄거에요."

 

 

 짧은 혀를 내밀어 보인 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소년의 모습이 귀여워 속으로 쿡쿡 웃으며 소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체구의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 이렇게나 큰 소년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쫓고 있었던 조직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에는 예상과는 다르게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납득하기 쉬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졌고 천천히 뛰기 시작하는 심장에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아이, 아니 이 소년에게 무엇을 느끼고 그리 두근거렸던 건지.

 

 얼마 가지 않아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소년이 고개를 돌리자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와 순식간에 눈이 마주쳤다. 그에 조금 놀랐는지 작게 떨린 어깨가 다시 진정을 되찾고 작은 입을 뻐끔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 마저 해주세요."

 "응?"

 "그 남자."

 

 

 순식간에 달라진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말해오는 소년에 나는 그만 눈을 돌렸다. 소년의 저 눈동자는 항상 보아왔던 것이었지만 언제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랬지, 그랬어.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조직의 간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단서라고는 긴 장발에 검은 코트, 검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언제나 왼 손으로 총을 쥐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남자의 코드네임은….

 

 

 "진(Jin)."

 

 

 내 입에서 먼저 나오기 전에 소년이 먼저 입밖으로 내뱉어낸 이름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직은 분명 괴멸되었다. 그것도 몇 달 전에. 보스라고는 별 것 없는 남자는 건물과 함께 무너져 내렸고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간부 중에서도 몇을 놓친 탓에 조직에 잠입되었던 수사관들은 최대한 모습을 감추고 수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내야 했었다. 덕분에 본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 소년도 몸을 숨기고 지내야만 했었다. 본래는 이런 곳이 아닌 좀 더 사람의 눈에 덜 뛰는 곳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며 내 옆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아직 단서는…."

 

 

 소년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전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굴었던 자였다.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낼리 없겠지. 다시 생각하자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본래 아무런 단서도 없던 조직을 뒤쫓고 있었기는 했지만 그 때는 그나마 조직 안에 잠입이라도 해 단서를 캐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곳 마저 사라져 버렸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덕분에 빌어먹을 FBI와 합동 수사를 펼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단서가 없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아 뭐든 하기 위해 돌아다녀봤지만 나오는 단서라고는 최근 크리스 빈 야드가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찾아가서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아직도 진과 연락을 하고 있는지. 그것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여배우한테!"

 

 

 그건 그래. 아니, 애초에 그녀가 우릴 만나기나 해줄까. FBI라면 얼마든지 쳐들어가서 당장 붙잡는 것은 가능했지만 교묘하게 수법을 피해가고 있어서 잡기는 커녕 접촉마저도 어렵다고 한다. 하기야 그렇게 쉽게 잡혔으면 아무도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지 않았겠지. 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그저 화를 삭히며 어떻게 해서든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붙잡고 말겠다는 의지로 최근 밤낮은 온통 그녀석 생각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꿈을 꾸기 시작한 것도 분명….

 

 

 "후루야 씨? 듣고 있어요?"

 "어? 아, 아아. 듣고 있지 그럼."

 "거짓말. 또 다른 생각하느라 흘려 들었겠죠. 요즘 이상해요. 잠은 잘 자고 있긴 해요?"

 

 

 잘 자고 있을리가. 꿈은 꿈대로, 녀석들은 녀석들대로 골칫덩어리가 한 둘이 아닌데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년에게 투정부릴 수는 더더욱 없었기에 아무것도 아닌 척 눈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다는 자기암시를 걸면서. 그 자기암시가 너에게도 전해졌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소년의 표정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저 보세요. 제 눈 똑바로 보고 말해요."

 "시, 신이치 군?"



 뭐라 말릴 틈도 없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한 소년의 얼굴은 어느새 서로의 콧대가 맞부딪힐 정도로 가까워졌다. 오갈 데 없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침을 꿀꺽 삼키자 소년의 보드라운 두 손이 내 양 볼을 감싸 안았다. 잠깐의 그 촉감에 이끌려 눈을 맞추자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검은 것이 꽈당!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뒤로 넘어져버린 나는 울려오는 머리를 붙잡고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신이치 군!?"
 "제 눈 똑바로 보라고 했죠? 또 무슨 생각 하고 있었던 거예요? 요즘 후루야 씨 진짜 이상하다고요!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는 해요? 잠은 자고 있어요? 밥은 제대로 먹고 있고요?"
 "그야 물론…."

 "거짓말!"


 소년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 소년을 보자 울 것 같은 얼굴이 나를 향해왔다. 내게 천천히 다가와 품에 안겨온 소년은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셔츠를 구겼다. 작게 떨려오는 숨결이 닿아오는 것도 잠시 바로 얼굴을 들은 너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두 눈을 껌뻑이는 것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양볼을 감싸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양쪽으로 잡아당겨 버리는 소년의 행동에 나는 다시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아, 으파! 신, 신이치...?"
 "반성 좀 하세요! 다 큰 어른이 말이야!"
 "미, 미앙! 다음부터는 제대로 챙길 테니까!"
 "몰라요!"


 단단히 화가 난 건지 한참이나 더 볼을 꼬집고 나서야 만족했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은 이만 가보겠다며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빠르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밥도 잠도 꼭 챙기라는 귀엽지 않은 잔소리는 덤이었다. 혼자 남아버린 나는 얼얼해진 볼을 쓸어내리며 다시 바닥으로 드러누웠다. 힘은 쥐뿔도 없는 것이 이럴 때만 조금 힘이 세지는 듯했다. 하여간.





*





 눈을 떠 보니 어느새 해 질 녘이 되었는지 붉은 노을이 방 안을 비추며 하늘 저편으로 점점 저물어 가는 것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대로 잠들어 버렸던 걸까. 아까의 통증이 남아있는 탓인지 지끈거려 오는 머릴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벽에 달려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오후에 회의가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후들거리는 다리에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동안의 피로가 쌓여있던 탓인가 좀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와는 조금 달라진 방 배치가 눈에 들어왔다. 고의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눈에 거슬려 마지막으로 움직임이 멈춘 곳에 발을 옮겼다. 거실에서부터 방으로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 그곳에는 잔뜩 어지럽혀진 가구들이 억지로 제자리를 찾아 놓여 있었고 붉은 것으로 물들여진 카펫은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새하얀 자위를 드러내며 식어가는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뒷머리에 느껴지는 차가운 총구가,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어느 쪽이 현실인지 이미 알고 있잖아?"


- 타앙.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뱉어내고 눈을 뜨자 그곳은 아까 그만 잠들어 버렸던 방바닥이었다. 누가 한 것인지 뻔히 보이는 푸른 담요가 가슴께에서 스륵 흘러내렸다. 방금 꾸었던 꿈 탓인지 온 몸이 식은 땀으로 가득했다. 젖어버린 셔츠는 끈적하게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머릿결도 축축하게 젖어 볼에 붙어 와 눈살을 찌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었던 것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진 몸에 속으로 작은 의문을 품고 방을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이며 욕실까지 방문을 전부 열어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여 거실 소파에 다시 드러누웠다. 축축해진 몸탓에 기분이 불쾌했다. 그러기를 잠시 번호키가 눌러지고 문이 열렸다. 자연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소년이었다.


"아, 일어나셨어요? 잘 자고있길래 깨우지는 않았는데…. 아니, 이게 무슨 꼴이에요? 왜 이렇게 땀을 흘렸어요?"


 축 늘어져 있는 나를 보고 신발도 벗다만 채 황급히 안으로 들어온 소년은 바로 나를 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눌러붙자 왠지 모를 안도감에 눈이 사르르 감겨왔다. 그 순간 짝! 하고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눈 앞에서 박수를 친 건지 시야를 가득히 채운 두 손이 모아져 있었다.


"정신 차려요, 후루야 씨!"
"어, 어?"
"오늘 정말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피곤한거면 제대로 씻고 자는게 좋아요. 아니, 그냥 이대로 쉬어요. 후루야 씨 분명 지쳤어."
"아니, 나는 괜찮아."
"거짓말 하지 말랬죠."


 볼을 뾰루퉁하니 부풀린 소년이 내 손을 붙잡았다. 뜨거운 손이 차가운 내 손에 맞닿자 익숙치 않은 온기에 그만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다시 눈을 꽉 감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 지으며 네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거짓말."
 "정말이야."


 여전히 미소를 띤채 네게 입맞추자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소년이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아, 하게 해준다면 더 기운이 샘솟을지-"
 "시끄러워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소년에게 입을 틀어막혔다. 작은 손바닥이 입술에 닿자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 살짝 핥아올리자 화들짝 놀란 소년이 빠르게 손을 빼냈다. 그에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고 어깨를 으쓱이자 소년의 발이 내 발등 위로 크게 떨어졌다. 꽤나 아팠지만 이 정도 쯤은 이미 익숙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냐며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굳이 소년을 보지 않아도 억울한 소년의 얼굴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직은 아이같은 면이 남아 있어 더욱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장난 그만 치고 씻고오세요. 온 몸이 땀투성이야."
 "알았어, 알았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소년은 나를 욕실로 밀어넣었다. 그에 웃음을 터뜨리자 소년이 빠르게 문을 쾅 닫아버린다.그런 모습마저 귀여워 입에 미소를 걸치고 빠르게 옷을 벗어내렸다. 욕실에 들어서 샤워기를 틀자 얇은 물줄기에서 굵은 물줄기가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다 씻겨져 내릴 것처럼 강하게 몸을 치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

 

 

 

 

 

 있을리 없는 소년이 내 앞에 섰다. 분명 이것은 꿈이겠지. 소년은 이전처럼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두 팔을 뻗어왔다. 나는 그에 끌리듯이 두 손을 뻗었고…

 

 순식간에 너는 산산조각이 났다.

 

 사라진 너의 목 언저리를 허망해져버린 눈 속에 담으며 데구르르 굴러간 너의 머리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동그란 눈을 껌뻑이며 나를 마주한 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만 벗어나야죠, 후루야 씨."

 "…무엇을?"

 "그릇된 환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소년이 웃었다.

 

 

 "벗어나야해요."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다시 꿈에서 깨어났다. 소년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눈을 뜬 그 곳은 새하얀 병동이었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소년이 아닌….

 

 

 "후루야 씨!"

 "…카자미."

 "괜찮으신가요? 잠깐 자택에 들렀는데 소리가 나지않아서…."

 "미안하군. 또 걱정을 끼쳤네."

 "…이제 그만 잊으셔야해요, 후루야 씨."

 

 

 남자가 웃었다. 억지로 웃는 것이라는 것쯤은 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흔들리는 입꼬리, 떨리는 눈동자. 떨어지는 식은 땀.

 

 

 "무슨 소리하는거야, 카자미."

 "그 소년은 죽었어요, 후루야 씨. 그것도 당신의 눈 앞에서."

 "이제 그만 가봐야해. 정신도 차렸고, 나는 괜찮아." 

 "아시잖아요. 그 폭발음 속에서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쯤은 당신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그 아이가 기다릴거야."

 "기다리지 않아요.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어차피 돌아가도 당신은 혼자라고요, 후루야 씨!"

 

 

 - 쨍그랑.

 

 하아. 하아. 하아…. 그만해. 그만해. 아무도 죽지 않았어. 그 날은 피곤했을 뿐이야. 피곤해서 그런 꿈을 꿨을 뿐이야. 시야가 흔들린다. 서 있는 이 곳이 현실이 아닌 지옥인 것 마냥 지면이 흔들리며 몸을 쓰러트렸다. 시트자락을 붙잡고 애써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리는 내 것같지 않았고 나는 다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내 귀 바로 옆에서 뛰는 것마냥 시끄럽게 울려퍼졌고 지끈거리는 머리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내 정신을 휘저어놓았다. 옆에 쓰러져 있는 폴대가 날카롭게 변해 나를 노리는 것 처럼 보였고 

 

 

 "후루야 씨!"

 "…하아. 신이치, 신이치 군…."

 「후루야 씨!」

 "신, 이치…?"

 

 

 흔들리는 시야 앞에 소년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비틀비틀 걸어온 너는 어느새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를 껴안아왔다.

 

 

  「괜찮아요?」

 "신이치, 군?"

  「미안해요, 내가 너무 늦게 왔죠?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아, 아아…. 미안해. 요즘…피곤했었나봐."

 「괜찮아요. 조금만 쉬면 된다고 의사선생님께서 그러셨으니까 우리 여기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다가 가요.」

 "응, 그래. 그러자."

 

 

 소년이 나를 부축하는대로 나는 소년의 손길에 끌려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가 시끄러웠지만 소년이, 신이치가 내 옆에 있었기에 나는 괜찮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거친 호흡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숨을 고르고 다시 눈을 떠보았지만 역시나 소년은 내 옆에 있었다. 웃으면서 괜찮다며 내 볼을 쓰다듬어주고 손을 붙잡아 주었다.

 

 

 "후루, 야 씨?"

 "아아…. 카자미. 나는 괜찮아. 신이치 군이 옆에 있어줄 거니까, 너는 이만 가봐도…."

 "아무도 없어요."

 "무슨 소리야?"

 "여기엔 지금 후루야 씨와 저 뿐이라고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신이치 군은 지금 내 옆에 있잖아. 그래, 바로 네 옆에."

 

 

 그렇지? 시선을 돌려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그런데 어라, 언제부터, 언제부터였지? 네가 그런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가? 새까만 마스크를…쓰고 있었던가? 아아, 쓰고 있었을 거야. 그래, 그랬을 거야. 그런데 있잖아, 신이치 군. 어째서 그렇게 다친거야. 어째서 그렇게 다친 몸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어째서 다시 입을 다물은 거야. 어째서 나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

 

 삐-, 하는 소리가 순식간에 머리를 덮쳤다. 거칠어진 호흡이 순식간에 숨통을 죄여왔고 호흡이 마음처럼 되지 않자 나는 소년의 손을 꽉 붙잡았다. 하지만 내게 잡힌 것은 소년의 따스하고 작은 손이 아닌 차가운 시트자락이었다. 신이치는? 신이치 군은? 퍼뜩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더이상 그 곳에 소년은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또 가버리는 거야. 가지마, 가지마 신이치. 난 나, 나는 아직….

 

 

 "후루야 씨…!"

 "카자미. 카, 자미. 찾아와. 어디갔어? 그는? 방금까지, 바, 방금까지 내 옆에 있었는데…!"

 "제발 이제 그만하세요, 후루야 씨…! 그 소년은, 아니 쿠도 신이치 군은 이미…. 이미 죽었다고요!"

 

 

 죽어? 누가. 누가? 아냐. 죽지, 죽지 않았어. 아 그래. 그렇구나. 난 방금 꿈을 꾼거야. 신이치가 찾아온 꿈을 꾼거야. 그래. 아직, 아직 여기에 안 온 것 뿐이야. 그렇지? 그렇다고 해줘.

 

 

 신이치.

 

 「후루야 씨」

 

 제발 가지마.

 

 「이게 현실이에요.」

 

 가지 말아줘.

 

 「나는 이미」

 

 제발 그 이상 말하지 마.

 

 「잘 있어요, 후루야 씨.」

 

 제발 부탁이야.

 

 「나는 더이상 당신이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아프지 않을게. 안 아플게. 그러니까 내 옆을 떠나지 마. 제발. 나를 혼자 두지 말아줘….

 

 

 

 

 

 삐-, 하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검게 둘러싸인 공간에 나는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고, 내 앞에 서있던 소년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그대로 총을 쏴 내 앞에서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나는 그 것을 막지도, 붙잡지도 못한 채 멍하니 그의 시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죽어있는 소년이 말했다. 후루야 씨. 더이상 나를 죽이지 말아줘요. 그 뒤로 나는 더이상 소년의, 쿠도 신이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

 

 

 

 

 

 "어, 카자미 씨!"

 "어? 아아."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고 보니 요즘 그 분은 괜찮으세요?"

 "…말도 마세요. 일상적인 이야기도 힘드신 상태에요."

 "아…,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후루야 씨가 한 번 쓰러진 이후로 수 개월이 지났다. 다시 정신을 찾는가 하면 또 다시 그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기를 반복할 뿐 이전의, 원래의 후루야 씨는 더이상 만날 수 없었다. 그 소년의 환각을 볼 때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기는 했으나 그 소년 뿐만이 아닌 다른 자들의 환각에도 시달려 점점 피폐해져 갔고, 대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윗 측에서도 더이상 그의 힘을 빌리지 않겠다며 그를 방관했고, 그나마 친분이 남아있던 자들이 종종 그의 상태를 살피러 갔었다. 그가 이렇게 변해버린 지도 1년이 지나간다. 1년 전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했다. 폭발음과 함께 그의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후루야 씨는 아직도, 그 날 그 장소에서 시간이 멈춰있는 것이 분명했다. 

 

 

 쿠도 신이치가 죽어버린 그 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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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츠님 썰 참고해서 작성된 글입니다.

* 사랑에 목마른 신이치와 절대 사랑을 주지 않는 왼쪽

* 검은조직 AU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껏 여유로운 어느 날의 오후였다. 모종의 이유로 방 안에서 자주 나오지 못 하는 신이치는 남자와의 만남을 한껏 기다리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창문틀에 멍하니 시선을 고정시켰다. 유일하게 방을 비춰주던 형광등이 곧 끝을 알리듯 방안에 어둠을 가져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빛을 되찾긴 했지만 남자가 오면 말해둬야 겠다 생각하며 신이치가 크게 하품했다. 언제 오는 걸까. 빨리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침대에 누인 몸을 웅크린다. 그러기도 잠시, 신이치가 급히 몸을 일으켜 문을 바라봤다.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신이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제발, 제발.

 

 - 똑똑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문앞으로 달려가 짧게 심호흡을 하고 머리를 정돈한다. 옷차림은 괜찮은지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확인한 신이치는 문을 마주했다. 그리고

 

 - 똑똑

 

 들려왔던 노크 소리 만큼 똑같이 두 번 노크를 두드린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잡고 떨리는 눈동자로 문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이 문을 바라봤다. 특별히 제작된 열쇠가 없이는 밖에서만 열 수 있도록 되어있는 문이라 수많은 잠금장치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소리가 안쪽에도 울려 퍼져왔다. 가슴을 움켜쥔 손에 점점 땀이 맺히고 문이 열리도록 뒷걸음질을 치자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오랜만이네요."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매혹적인 구릿빛 피부에 아름다운 금발을 한 남자였다. 사람 좋은 미소로 신이치를 바라보는 남자의 이름은, 아니 그의 코드 네임은 버번(Bourbon). 조직원 중에서도 정보 수집력이 가장 뛰어나 정보원으로 불리고 있는 남자는 시간이 될 때면 언제나 신이치를 만나러 오는 남자였다. 특별히 그를 지켜보라는 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는 즐겁다는 듯이 신이치를 찾아오곤 했다. 하루의 태반을 혼자서 지내오는 신이치에게 있어서 남자의 방문은 반가웠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요."

 

 

 들떠있는 자신의 감정을 들킬까 애써 표정을 감추고 신이치가 작게 웃어보였다. 자연스레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문을 닫고 곧장 침대로 향했다. 오늘은 어떤 임무를 하다 온 건지 정갈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신이치가 눈을 굴렸다. 회색의 깔끔한 정장이 남자에게 무척 잘어울려 가슴이 쿵쾅 울렸다. 그마저도 남자에게 들키는 건 아닐까 싶어 고개를 세차게 젓고 남자가 앉아있는 침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바닥에 던지고 겉재킷을 벗어 던진 남자는 평소보다 거칠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아뇨, 말할만한 일은 아니에요. 언제나 그렇죠."

 "…할 거에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신이치에 남자가 눈을 흘겼다. 눈을 내리깔고 작게 입술을 물고 있는 모습이 어지간히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보인다. 남자는 속으로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신이치에게로 다시 눈을 흘겼다.

 

 

 "아뇨, 오늘은 아무 것도 안 할거에요. 지쳤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눈을 감았다. 그에 신이치의 표정은 순식간에 파랗게 질려버렸지만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보았다고 해도 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에게 신이치란 존재는 그러한 정도였고, 그렇게 깊이 마음을 준 사람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남자는 이러한 상황이 즐거웠다.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표정이며 행동이 변하는 신이치는 한껏 임무에 지쳐 돌아왔을 때의 자신에게 있어 딱 놀기 좋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 그래요. 오늘 많이 힘들었나봐요."

 "맞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신이치 군은 꽤 하고 싶은 모양이니까, 혼자서 할래요? 평소 밖에서 사람을 대할 때만 짓던 상냥한 웃음을 흘리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에 신이치가 고개를 번쩍 들고 남자를 바라봤다. 그 짓을 할 때가 아닌 이상 쉽게 보여주지 않는 남자의 사랑스러움이 흘러 나오는 눈동자가 자신을 마주했다. 신이치가 침을 꿀꺽 삼키고 남자에게로 손을 뻗었다. 정말 해도 돼요? 하고싶다면. 하기 싫으면 안해도-. 남자의 말이 마치기도 전에 빠르게 입술로 다가온 신이치는 자신이 얼마나 그를 기다려왔는지 맹렬히 입술을 파고 들며 자신의 사랑을 전했다. 남자는 묵묵히 신이치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래, 이 표정. 나는 이 표정이 좋다.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에게만 매달려 오는 소년의 이 눈동자가. 가슴의 한 구석에서 무언가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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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퀘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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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라고도 하기 어렵고, 감금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 나는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전등으로 밝혀지는 빛 외의 것은 본 적이 없어 몇 날 며칠이 흘렀는지 모른 채 나는 이 방안에 계속 갇혀있었다. 얼마나 켜져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요즘에서야 전등이 다해 껌뻑이기 시작했다. 방 안에 놓인 것은 내가 지금 앉아있는 이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밖의 빛은 들어오지 않지, 정작 나를 가둔 사람은 일주일 아니 이주일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사람이다. 이럴 거면 가두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남자의 생각은 이전에도 알기 어려웠지만 이번만큼은 더 알기 어려웠다.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없는 방이다 보니 심심할 때마다 계속 잠만 자는 바람에 몸이 아주 나른했다. 남자가 올 땐 나른해질 틈도 없긴 하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그 장면이 떠오른다.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발걸음하며 손짓까지 상냥하기만 했던 예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그가 나를 맞이했다. 손찌검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이상의 상상도 하지 못할 만한 그런 행동. 눈을 감은 너머로 다가오는 눈앞의 남자에 급히 눈을 뜨고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귓가에 잔잔히 속삭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겁 먹지마렴.

 

 침을 꿀꺽 삼키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켜며 뱉기를 반복해 억지로 가슴을 진정시킨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생각되었을 때 살며시 눈을 떴다. 차라리 오늘도 그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전의 나라면 이러한 평화는 지루하다 말했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이 정도의 여유가 딱 적당했다. 그래 조금 많이 자면 어때.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눈을 뜨자 어느새 전등이 다해버렸는지 새까만 공간이 나를 맞이했다. 의미 없이 두 눈을 깜빡이며 밀려오는 하품에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뱉어내자 새까만 공간에서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일어났구나."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아직 자는 척 새근새근 숨소리를 뱉고 몸을 뒤척였다. 남자가 어느 방향에 앉아있을지 몰라 우선 바라보고 있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스며들어온 손이 내 볼을 감싸고 입술을 쓸어냈다. 최대한 평소와 다르지 않은 박자로 숨을 들이쉬고 뱉어내었다. 심장 소리가 쿵쾅쿵쾅 온몸에 울려 퍼지는 게 느껴져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그에게 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얼마 머물지 않고 남자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아 남자가 지금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길이 없어 괜히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어둠을 꿰뚫고 내 눈, 코, 입 하나하나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닐까.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나갔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가."

 

 

 남자가 나를 불렀다. 지금의 내게 딱 어울리다고 할 수 있는 호칭으로 남자가 나를 불렀다. 나는 입안의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자는 다음 말을 고르고 있는 건지 내 답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건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덕분에 방 안은 정적이 맴돌아 내게는 오로지 내 심장 소리만이 귓가를 채웠다.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뜨자 여전히 짙은 어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지지 않고 어둠을 직시하자 차근차근 익숙해진 눈이 주변을 천천히 비춰준다. 제대로 그 물건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형태는 보이는 정도였다. 눈을 천천히 굴려 가며 내 앞에 남자가 있는 건지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필이면.

 

 

 "깨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남자의 말에 대답 대신 숨을 들이켜자 예상했다는 듯 피식하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이대로 아무 말 없이 넘어가도 이어질 남자의 반응은 눈에 선했기 때문에 나는 그만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최대한 내가 겁먹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기 위해 언제 나와 같이 평범하게 침착한 목소리로.

 

 

 "모른 척해주면 좀 덧나나요."

 "이제야 말하는군."

 "이젠 내 말에 답해주지도 않네요."

 

 

 남자는 다시 입을 닫았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고 남자가 다시 내게로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커다란 손은 손에 비해 얇디얇은 내 목을 움켜잡고 끼익하는 소리와 동시에 남자의 몸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남자는 다른 한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내게 빠르게 입을 맞췄다. 이 어둠 속에서 내 입술의 위치는 어떻게 찾은 건지 정확하게 달려 들어오는 남자에 놀라 그만 어깨를 떨었다. 그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게 남자에게 딱 좋았는지 더 깊숙이 파고들어 오는 그에 나는 그만 눈을 꽉 감았다. 내 의사에는 관계없이 핥고 빨아가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던 남자는 손에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직은 답답한 정도에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눈을 떠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가."

 

 

 이전과 같은 달콤한 목소리로 남자가 다시 나를 불렀다. 자칫하면 홀릴 것만 같은 목소리에 자신의 혀를 크게 꽉 깨물고 정신을 바로 잡으며 남자를 노렸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퍽이나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는 건 징그럽게도 빠르게 전달되어와 고개를 돌렸다.

 

 

 "아가."

 

 

 다시 한번 나를 부르며 남자가 내게 다가와 남자의 얼굴보다는 한참이나 작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오늘따라 다른 그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고 남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의 머리가 닿아있는 탓인지 숨소리가 내 심장 소리에 어울려 박자를 이루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남자의 머리를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네가 이렇게 옆에 있는데. 어디에도 못 가는데."

 

 

 남자가 고개를 들고 다시 나를 마주했다. 무언가가 뜨거운 것이 떨어져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시트를 적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나는 이렇게 울고 싶을까."

 

 

- 전 편은 이쪽: http://hitotsu004.tistory.com/8

 

 

 

 

 

 오늘의 날씨 맑음. 커다랗고 작은 구름이 하나둘씩 하늘을 헤엄치며 저 멀리 끝자락으로 사라진다. 평화로운 오전이지만 아침부터 그리 갈 곳이 많은 사람은 서로가 앞을 보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나도 한때에는 저랬었지. 지금은 자유로워졌지만. 큰 도로에서는 차가 열을 지어 달려가고 도보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몸을 부딪쳤다. 계속 위에서 지켜보는 것도 조금 지루해져 사람들이 그나마 적은 도보로 몸을 틀고 계단을 내려왔다.

 

 육교 위에서 사람을 내려보는 것은 인간을 관찰하는 데에 있어 꽤 많은 도움이 된다. 마치 소설 속에 등장했던 등장인물 셜록 홈즈처럼 저 사람은 평소 어떠한 자세를 취하는지, 버릇은 무엇이고 자주 쓰는 손가락은 어떤 손가락인지까지 세세하게 알 수 있다. 이전 같았으면 그런 일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었지만, 최근에는 하도 사람을 지켜봐서 그런지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꽤 만족스러운 이야기지만 요즘에는 그런 기술을 쓸만한 상대도, 사람도 없어서 굳이 실력을 늘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아무튼. 오늘은 어디부터 가보지?"

 

 

 두 팔을 하늘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하늘을 올려봤다. 그래, 내가 갈 곳이 어디 있겠어. 구름따라 가는 거지. 살짝 입꼬리를 당기고 구름이 향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좋으면서도 좋지 않은 예감이 가슴을 간질인다.

 

 

 

 

 

*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이전에 항상 걸었던 그 거리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와 본 곳이라 그런지 눈에 생기가 돌았다. 골목길 주변을 들여다볼 때마다 새록새록 돋아나오는 추억에 혼자 실실 웃으며 발에 조금 힘을 주며 걸었다. 그래, 여기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지, 그때는 조금 곤란했어. 하하. 그때라면 맘 놓고 웃지도 못할 일을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나버렸구나.

 

 

 "나는 이렇게 멈춰버렸는데."

 

 

 왠지 모르게 느껴져 오는 씁쓸한 감정에 고개를 숙였다. 많이 걸은 것도 아닌데 벌써 무거워져 오는 어깨에 깊은 한숨을 뱉으며 잠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지금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슬픈 얼굴일까, 기쁜 얼굴일까. 아니면 그리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하, 후자는 아니야. 누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는걸. 크게 심호흡을 들이켜고 뱉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으악!"

 "아야!"

 

 

 누군가 내 머리 위에 있었는지 크게 부딪히는 바람에 상대도 나도 크게 아픔을 호소하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대체 누구야?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찡그린 눈을 펴 고개를 들자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야…. 아파라…."

 

 

 바닥에 주저앉아 턱을 붙잡고 있던 남자는 왠지 눈에 익숙한 구릿빛 피부에 보통이라면 어울리지 않을 금발 머리를 한 남자였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나로 인해 찰랑거리며 남자의 볼을 감싸든다.

 

 

 "이봐요…,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해요? 아니, 아픈 건 아닌 것 같아 그건 그거대로 다행이기는 한데…."

 "아, 죄송해요. 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그…괜찮으세요?"

 "음."

 

 

 내 말에 남자가 턱을 양쪽으로 문질러 보고는 입을 딱딱 닫고 고개를 들었다. 한쪽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남자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이고 입을 열었다. 괜찮은 것 같아요. 아마도. 뒤에 붙은 아마도, 라는 말이 조금 아니 많이 양심을 찔리게 했다. 내 탓인 것 같으면서도 내 탓이 아닌 것 같은 이 상황은 꽤 마음이 불편했다.

 

 

 "으, 정말 죄송해요. 아, 여기요."

 

 

 아직도 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를 향해 손을 뻗자, 남자가 눈살을 펴고 내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옷을 털었다. 그나저나 당신, 괜찮은 거 맞아요? 아, 괜찮아요. 아파서 앉아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럼 왜 그러고 있었는데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뭐가 그리 알고 싶은 건지 계속해서 캐물어 오는 그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눈을 마주했다. 나보다는 조금 큰 키에 당황했지만, 표정을 잃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지 않아요?"

 "아, 미안해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까 그렇게 묻는 게 버릇이 됐나보네요.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별로. 됐어요."

 "사과하게 해줘요. 아, 괜찮으시다면 근처 카페에서 차 한잔이라도?"

 

 

 

 전혀 악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남자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만 자리에서 뜨려는 걸 눈치챈것인지 빠르게 붙잡아온 손에 나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붙잡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마주했다. 남자도 조금 놀란 눈치였는지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다시 나를 보며 싱긋 웃는다.

 

 

 "헌팅해요? 당신 그쪽 사람?"

 "싫어요? 아, 편견이라던가."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문제없네요. 마침 이 근처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카페가 하나 있어요. 그쪽으로 가요."

 

 

 아니 난…. 됐다며 거절하기 위해 고개를 젓고 남자를 다시 올려 보자 간절한 눈빛이 나를 주시했다. 말로는 뱉지 않았지만 제발, 부탁이에요. 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차마 거절의 말은 턱 위로 나오지 못 하고 다시 꿀꺽, 삼켜졌다. 이러면 곤란한데…. 나는, …나는.

 

 

 "알겠어요, 제가 졌어요. 대신에 카페 말고."

 

 

 

 

 

*

 

 

 

 

 

 양 손에는 각각 한 개의 캔 커피를 들고 내가 앉아있는 벤치를 향해 달려온 남자는 씩 웃으며 손에 들린 캔 커피를 흔들어 보였다. 어느 쪽? 보여준 커피는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이 남자는 왼쪽의 것을 좋아할 것 같이 보여 망설임 없이 오른 쪽 것을 붙잡았다. 그러자 남자의 표정이 살짝 흔들리고 다시 웃음을 그리며 내 옆에 앉는다.

 

 

 "정말 이런 걸로 괜찮아요?"

 "뭐가요?"

 "사과의 표시."

 "별로 상관 없어요. 머리 부딪힌 건 서로의 과실이고, 당신이 나에 대해 그렇게 캐묻는 건 아까 충분히 사과 했잖아요."

 

 

 어깨를 으쓱이고 남자가 따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꿀렁꿀렁 목구멍을 타고 들어오는 커피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캔을 마주했다. 나, 마실 수 있구나. …어? 캔에서 입을 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캔을 든 손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왜…그렇게 생각했지?

 

 

 "왜 그래요?"

 "네?"

 

 

 계속 손을 돌려 보이며 커피를 마주 하고 있던 내가 이상했는지 남자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에 깜짝 놀라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찌푸려진 눈살이 마치 아픔을 호소하는 것처럼 변한 얼굴이 나를 바라본다. 너무나도 슬픈 얼굴,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남자의 볼을 쓸어내리고 입가에 웃음을 걸치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별거 아니에요."

 

 

 내 말에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나를 잡은 손에 천천히 힘을 줘 왔다. 손이 떨리는 게 느껴져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신이치."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그만 손에 들려있던 커피를 놓치고 말았다. 커피가 떨어져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에 따라 나무가 흔들리고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순식간에 내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희미하게 귓가를 맴돌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흩어진 나뭇잎들은 곧 제자리를 찾아갔고 언제 불었냐는 듯 바람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한 번도 뛰지 않았던 가슴이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는 탓에 새빨개진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남자의 어깨가 움찔거리는 게 느껴진다. 고개 들어요. 나를 보세요. 지금 뭐라고 했냐니까요. 남자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흔들어 댈 때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고 그제야 나를 마주해 온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남자를 마주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애써 힘을 주며 붙잡고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남자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말해줘요, 어서."

 "말할 수 없어요."

 "어째서?"

 "말하면 안 되는 사실이니까."

 "제발 부탁이에요. 어서 말해줘요. 당신 날 뭐라고 불렀어?"

 

 

 남자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파르르 떨리는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랑곳 않고 남자의 어깨를 쥐흔들며 남자를 재촉했다. 결국 내게 못 이긴 남자는 고개를 돌려 내게 시선을 피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신이치."

 

 

 심장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 했던 체온이 점점 차갑게 내려가는 것이 느껴져 입술을 잘근 씹고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 한 숨을 코로 거칠게 내뱉으며 남자의 어깨를 꽉 쥐었다.

 

 

 "다시."

 "…신이치."

 "다시요."

 "…쿠도, 신이치."

 "…다시 말해봐요. 내가, 누구라고요?"

 

 

 

  2개월 전 한 약물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버린 내 하나뿐인 연인, 쿠도 신이치. 그게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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