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퀘로 작성한 글입니다.
* 사망 소재 있습니다. 눈쌀 찌푸려지시는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꿈을 꾼다. 지독하게도 잔인하고 서글픈 꿈을. 그 꿈 안에는 언제나 한 남자가 등장한다. 끔찍한 절망을 외치며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손에 들린 탄알 없는 총은 뜨거운 열기도 잠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고 붉게 달아오른 목대는 끊어진 목소리로 간간히 숨을 뱉어내었다. 정신을 잃을 것 마냥 새하얀 자위를 드러내며 너무 벌어지다 못해 끊어질 것 같은 턱을 떨면서 애꿎은 땅을 내려치는 너는 분명, ……나였다.
*
"후루야 씨?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
"어? 아, 아아. 괜찮아."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 정신을 멍하게 두었던 탓에 걱정이 되었는지 소년이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밀어왔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자 네가 고개를 넣고 어깨를 으쓱였다.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라도 읽은 것인지 만족스럽지 않은 눈을 굴리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굳이 입 밖에 꺼낼 정도도 되지 않는 한심한 이야기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삼킨 내게 조금 삐진 듯한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표정을 정리해 눈가를 휘어 미소지었다.
"가끔 후루야 씨의 그런 얼굴 싫더라."
"응? 무슨 얼굴?"
"안 가르쳐 줄거에요."
짧은 혀를 내밀어 보인 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소년의 모습이 귀여워 속으로 쿡쿡 웃으며 소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체구의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 이렇게나 큰 소년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쫓고 있었던 조직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에는 예상과는 다르게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납득하기 쉬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졌고 천천히 뛰기 시작하는 심장에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아이, 아니 이 소년에게 무엇을 느끼고 그리 두근거렸던 건지.
얼마 가지 않아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소년이 고개를 돌리자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와 순식간에 눈이 마주쳤다. 그에 조금 놀랐는지 작게 떨린 어깨가 다시 진정을 되찾고 작은 입을 뻐끔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 마저 해주세요."
"응?"
"그 남자."
순식간에 달라진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마주하고 말해오는 소년에 나는 그만 눈을 돌렸다. 소년의 저 눈동자는 항상 보아왔던 것이었지만 언제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랬지, 그랬어.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조직의 간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단서라고는 긴 장발에 검은 코트, 검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언제나 왼 손으로 총을 쥐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남자의 코드네임은….
"진(Jin)."
내 입에서 먼저 나오기 전에 소년이 먼저 입밖으로 내뱉어낸 이름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직은 분명 괴멸되었다. 그것도 몇 달 전에. 보스라고는 별 것 없는 남자는 건물과 함께 무너져 내렸고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간부 중에서도 몇을 놓친 탓에 조직에 잠입되었던 수사관들은 최대한 모습을 감추고 수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내야 했었다. 덕분에 본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 소년도 몸을 숨기고 지내야만 했었다. 본래는 이런 곳이 아닌 좀 더 사람의 눈에 덜 뛰는 곳으로 보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며 내 옆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아직 단서는…."
소년의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전에도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굴었던 자였다.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낼리 없겠지. 다시 생각하자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본래 아무런 단서도 없던 조직을 뒤쫓고 있었기는 했지만 그 때는 그나마 조직 안에 잠입이라도 해 단서를 캐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곳 마저 사라져 버렸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덕분에 빌어먹을 FBI와 합동 수사를 펼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단서가 없기는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아 뭐든 하기 위해 돌아다녀봤지만 나오는 단서라고는 최근 크리스 빈 야드가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찾아가서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아직도 진과 연락을 하고 있는지. 그것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여배우한테!"
그건 그래. 아니, 애초에 그녀가 우릴 만나기나 해줄까. FBI라면 얼마든지 쳐들어가서 당장 붙잡는 것은 가능했지만 교묘하게 수법을 피해가고 있어서 잡기는 커녕 접촉마저도 어렵다고 한다. 하기야 그렇게 쉽게 잡혔으면 아무도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지 않았겠지. 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그저 화를 삭히며 어떻게 해서든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붙잡고 말겠다는 의지로 최근 밤낮은 온통 그녀석 생각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꿈을 꾸기 시작한 것도 분명….
"후루야 씨? 듣고 있어요?"
"어? 아, 아아. 듣고 있지 그럼."
"거짓말. 또 다른 생각하느라 흘려 들었겠죠. 요즘 이상해요. 잠은 잘 자고 있긴 해요?"
잘 자고 있을리가. 꿈은 꿈대로, 녀석들은 녀석들대로 골칫덩어리가 한 둘이 아닌데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년에게 투정부릴 수는 더더욱 없었기에 아무것도 아닌 척 눈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괜찮다는 자기암시를 걸면서. 그 자기암시가 너에게도 전해졌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소년의 표정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저 보세요. 제 눈 똑바로 보고 말해요."
"시, 신이치 군?"
뭐라 말릴 틈도 없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한 소년의 얼굴은 어느새 서로의 콧대가 맞부딪힐 정도로 가까워졌다. 오갈 데 없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침을 꿀꺽 삼키자 소년의 보드라운 두 손이 내 양 볼을 감싸 안았다. 잠깐의 그 촉감에 이끌려 눈을 맞추자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검은 것이 꽈당!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뒤로 넘어져버린 나는 울려오는 머리를 붙잡고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신이치 군!?"
"제 눈 똑바로 보라고 했죠? 또 무슨 생각 하고 있었던 거예요? 요즘 후루야 씨 진짜 이상하다고요!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는 해요? 잠은 자고 있어요? 밥은 제대로 먹고 있고요?"
"그야 물론…."
"거짓말!"
소년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 소년을 보자 울 것 같은 얼굴이 나를 향해왔다. 내게 천천히 다가와 품에 안겨온 소년은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셔츠를 구겼다. 작게 떨려오는 숨결이 닿아오는 것도 잠시 바로 얼굴을 들은 너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두 눈을 껌뻑이는 것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양볼을 감싸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양쪽으로 잡아당겨 버리는 소년의 행동에 나는 다시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아, 으파! 신, 신이치...?"
"반성 좀 하세요! 다 큰 어른이 말이야!"
"미, 미앙! 다음부터는 제대로 챙길 테니까!"
"몰라요!"
단단히 화가 난 건지 한참이나 더 볼을 꼬집고 나서야 만족했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은 이만 가보겠다며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빠르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밥도 잠도 꼭 챙기라는 귀엽지 않은 잔소리는 덤이었다. 혼자 남아버린 나는 얼얼해진 볼을 쓸어내리며 다시 바닥으로 드러누웠다. 힘은 쥐뿔도 없는 것이 이럴 때만 조금 힘이 세지는 듯했다. 하여간.
*
눈을 떠 보니 어느새 해 질 녘이 되었는지 붉은 노을이 방 안을 비추며 하늘 저편으로 점점 저물어 가는 것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대로 잠들어 버렸던 걸까. 아까의 통증이 남아있는 탓인지 지끈거려 오는 머릴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벽에 달려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오후에 회의가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후들거리는 다리에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동안의 피로가 쌓여있던 탓인가 좀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에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와는 조금 달라진 방 배치가 눈에 들어왔다. 고의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눈에 거슬려 마지막으로 움직임이 멈춘 곳에 발을 옮겼다. 거실에서부터 방으로 천천히. 천천히 움직인 그곳에는 잔뜩 어지럽혀진 가구들이 억지로 제자리를 찾아 놓여 있었고 붉은 것으로 물들여진 카펫은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새하얀 자위를 드러내며 식어가는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뒷머리에 느껴지는 차가운 총구가,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어느 쪽이 현실인지 이미 알고 있잖아?"
- 타앙.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뱉어내고 눈을 뜨자 그곳은 아까 그만 잠들어 버렸던 방바닥이었다. 누가 한 것인지 뻔히 보이는 푸른 담요가 가슴께에서 스륵 흘러내렸다. 방금 꾸었던 꿈 탓인지 온 몸이 식은 땀으로 가득했다. 젖어버린 셔츠는 끈적하게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머릿결도 축축하게 젖어 볼에 붙어 와 눈살을 찌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었던 것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진 몸에 속으로 작은 의문을 품고 방을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이며 욕실까지 방문을 전부 열어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여 거실 소파에 다시 드러누웠다. 축축해진 몸탓에 기분이 불쾌했다. 그러기를 잠시 번호키가 눌러지고 문이 열렸다. 자연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소년이었다.
"아, 일어나셨어요? 잘 자고있길래 깨우지는 않았는데…. 아니, 이게 무슨 꼴이에요? 왜 이렇게 땀을 흘렸어요?"
축 늘어져 있는 나를 보고 신발도 벗다만 채 황급히 안으로 들어온 소년은 바로 나를 껴안았다. 따뜻한 체온이 눌러붙자 왠지 모를 안도감에 눈이 사르르 감겨왔다. 그 순간 짝! 하고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눈 앞에서 박수를 친 건지 시야를 가득히 채운 두 손이 모아져 있었다.
"정신 차려요, 후루야 씨!"
"어, 어?"
"오늘 정말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피곤한거면 제대로 씻고 자는게 좋아요. 아니, 그냥 이대로 쉬어요. 후루야 씨 분명 지쳤어."
"아니, 나는 괜찮아."
"거짓말 하지 말랬죠."
볼을 뾰루퉁하니 부풀린 소년이 내 손을 붙잡았다. 뜨거운 손이 차가운 내 손에 맞닿자 익숙치 않은 온기에 그만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다시 눈을 꽉 감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 지으며 네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거짓말."
"정말이야."
여전히 미소를 띤채 네게 입맞추자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소년이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아, 하게 해준다면 더 기운이 샘솟을지-"
"시끄러워요."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소년에게 입을 틀어막혔다. 작은 손바닥이 입술에 닿자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 살짝 핥아올리자 화들짝 놀란 소년이 빠르게 손을 빼냈다. 그에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고 어깨를 으쓱이자 소년의 발이 내 발등 위로 크게 떨어졌다. 꽤나 아팠지만 이 정도 쯤은 이미 익숙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냐며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굳이 소년을 보지 않아도 억울한 소년의 얼굴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직은 아이같은 면이 남아 있어 더욱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장난 그만 치고 씻고오세요. 온 몸이 땀투성이야."
"알았어, 알았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소년은 나를 욕실로 밀어넣었다. 그에 웃음을 터뜨리자 소년이 빠르게 문을 쾅 닫아버린다.그런 모습마저 귀여워 입에 미소를 걸치고 빠르게 옷을 벗어내렸다. 욕실에 들어서 샤워기를 틀자 얇은 물줄기에서 굵은 물줄기가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든 것이 다 씻겨져 내릴 것처럼 강하게 몸을 치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
있을리 없는 소년이 내 앞에 섰다. 분명 이것은 꿈이겠지. 소년은 이전처럼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두 팔을 뻗어왔다. 나는 그에 끌리듯이 두 손을 뻗었고…
순식간에 너는 산산조각이 났다.
사라진 너의 목 언저리를 허망해져버린 눈 속에 담으며 데구르르 굴러간 너의 머리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동그란 눈을 껌뻑이며 나를 마주한 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만 벗어나야죠, 후루야 씨."
"…무엇을?"
"그릇된 환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소년이 웃었다.
"벗어나야해요."
그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다시 꿈에서 깨어났다. 소년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눈을 뜬 그 곳은 새하얀 병동이었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소년이 아닌….
"후루야 씨!"
"…카자미."
"괜찮으신가요? 잠깐 자택에 들렀는데 소리가 나지않아서…."
"미안하군. 또 걱정을 끼쳤네."
"…이제 그만 잊으셔야해요, 후루야 씨."
남자가 웃었다. 억지로 웃는 것이라는 것쯤은 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흔들리는 입꼬리, 떨리는 눈동자. 떨어지는 식은 땀.
"무슨 소리하는거야, 카자미."
"그 소년은 죽었어요, 후루야 씨. 그것도 당신의 눈 앞에서."
"이제 그만 가봐야해. 정신도 차렸고, 나는 괜찮아."
"아시잖아요. 그 폭발음 속에서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쯤은 당신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그 아이가 기다릴거야."
"기다리지 않아요.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어차피 돌아가도 당신은 혼자라고요, 후루야 씨!"
- 쨍그랑.
하아. 하아. 하아…. 그만해. 그만해. 아무도 죽지 않았어. 그 날은 피곤했을 뿐이야. 피곤해서 그런 꿈을 꿨을 뿐이야. 시야가 흔들린다. 서 있는 이 곳이 현실이 아닌 지옥인 것 마냥 지면이 흔들리며 몸을 쓰러트렸다. 시트자락을 붙잡고 애써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리는 내 것같지 않았고 나는 다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내 귀 바로 옆에서 뛰는 것마냥 시끄럽게 울려퍼졌고 지끈거리는 머리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내 정신을 휘저어놓았다. 옆에 쓰러져 있는 폴대가 날카롭게 변해 나를 노리는 것 처럼 보였고
"후루야 씨!"
"…하아. 신이치, 신이치 군…."
「후루야 씨!」
"신, 이치…?"
흔들리는 시야 앞에 소년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비틀비틀 걸어온 너는 어느새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를 껴안아왔다.
「괜찮아요?」
"신이치, 군?"
「미안해요, 내가 너무 늦게 왔죠?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아, 아아…. 미안해. 요즘…피곤했었나봐."
「괜찮아요. 조금만 쉬면 된다고 의사선생님께서 그러셨으니까 우리 여기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다가 가요.」
"응, 그래. 그러자."
소년이 나를 부축하는대로 나는 소년의 손길에 끌려 다시 침대 위로 누웠다. 아직도 지끈거리는 머리가 시끄러웠지만 소년이, 신이치가 내 옆에 있었기에 나는 괜찮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거친 호흡을 천천히 진정시키며 숨을 고르고 다시 눈을 떠보았지만 역시나 소년은 내 옆에 있었다. 웃으면서 괜찮다며 내 볼을 쓰다듬어주고 손을 붙잡아 주었다.
"후루, 야 씨?"
"아아…. 카자미. 나는 괜찮아. 신이치 군이 옆에 있어줄 거니까, 너는 이만 가봐도…."
"아무도 없어요."
"무슨 소리야?"
"여기엔 지금 후루야 씨와 저 뿐이라고요."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신이치 군은 지금 내 옆에 있잖아. 그래, 바로 네 옆에."
그렇지? 시선을 돌려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그런데 어라, 언제부터, 언제부터였지? 네가 그런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가? 새까만 마스크를…쓰고 있었던가? 아아, 쓰고 있었을 거야. 그래, 그랬을 거야. 그런데 있잖아, 신이치 군. 어째서 그렇게 다친거야. 어째서 그렇게 다친 몸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어째서 다시 입을 다물은 거야. 어째서 나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
삐-, 하는 소리가 순식간에 머리를 덮쳤다. 거칠어진 호흡이 순식간에 숨통을 죄여왔고 호흡이 마음처럼 되지 않자 나는 소년의 손을 꽉 붙잡았다. 하지만 내게 잡힌 것은 소년의 따스하고 작은 손이 아닌 차가운 시트자락이었다. 신이치는? 신이치 군은? 퍼뜩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더이상 그 곳에 소년은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또 가버리는 거야. 가지마, 가지마 신이치. 난 나, 나는 아직….
"후루야 씨…!"
"카자미. 카, 자미. 찾아와. 어디갔어? 그는? 방금까지, 바, 방금까지 내 옆에 있었는데…!"
"제발 이제 그만하세요, 후루야 씨…! 그 소년은, 아니 쿠도 신이치 군은 이미…. 이미 죽었다고요!"
죽어? 누가. 누가? 아냐. 죽지, 죽지 않았어. 아 그래. 그렇구나. 난 방금 꿈을 꾼거야. 신이치가 찾아온 꿈을 꾼거야. 그래. 아직, 아직 여기에 안 온 것 뿐이야. 그렇지? 그렇다고 해줘.
신이치.
「후루야 씨」
제발 가지마.
「이게 현실이에요.」
가지 말아줘.
「나는 이미」
제발 그 이상 말하지 마.
「잘 있어요, 후루야 씨.」
제발 부탁이야.
「나는 더이상 당신이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아프지 않을게. 안 아플게. 그러니까 내 옆을 떠나지 마. 제발. 나를 혼자 두지 말아줘….
삐-, 하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검게 둘러싸인 공간에 나는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고, 내 앞에 서있던 소년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그대로 총을 쏴 내 앞에서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나는 그 것을 막지도, 붙잡지도 못한 채 멍하니 그의 시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죽어있는 소년이 말했다. 후루야 씨. 더이상 나를 죽이지 말아줘요. 그 뒤로 나는 더이상 소년의, 쿠도 신이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
"어, 카자미 씨!"
"어? 아아."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고 보니 요즘 그 분은 괜찮으세요?"
"…말도 마세요. 일상적인 이야기도 힘드신 상태에요."
"아…,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후루야 씨가 한 번 쓰러진 이후로 수 개월이 지났다. 다시 정신을 찾는가 하면 또 다시 그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기를 반복할 뿐 이전의, 원래의 후루야 씨는 더이상 만날 수 없었다. 그 소년의 환각을 볼 때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기는 했으나 그 소년 뿐만이 아닌 다른 자들의 환각에도 시달려 점점 피폐해져 갔고, 대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윗 측에서도 더이상 그의 힘을 빌리지 않겠다며 그를 방관했고, 그나마 친분이 남아있던 자들이 종종 그의 상태를 살피러 갔었다. 그가 이렇게 변해버린 지도 1년이 지나간다. 1년 전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 날을 잊지 못했다. 폭발음과 함께 그의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후루야 씨는 아직도, 그 날 그 장소에서 시간이 멈춰있는 것이 분명했다.
쿠도 신이치가 죽어버린 그 날에서.